[교황의 트윗] “우리가 죽을 때 신앙을 지킨다면 큰 은총”


“우리는 죽음의 신비 앞에 작고 무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 순간, 우리 마음 안에 신앙의 불꽃을 지킨다면 크나큰 은총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위령의 날’로 기념하는 11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위와 같이 트윗했다.

그리스도인의 시각 안에서의 죽음

그리스도인의 시각 안에서 죽음의 의미는 희망으로 열려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 덕분에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립 1,21).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이것은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2디모 2,11)”(「가톨릭교회 교리서」, 1010항).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완전하고 결정적인 친교로 인도하기 때문에 “이득”으로 간주된다.

전례 안에서 죽음의 의미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교회 전례가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 감사송1)”(「가톨릭교회 교리서」, 1012항).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13항).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4년 11월 2일 삼종기도 중에 다음과 같이 설교한 바 있다.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 무덤관리, 그들을 위한 기도는 죽음이 인생에 대한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굳센 확신에 뿌리 내린 신뢰의 희망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영원한 삶으로 열려 있으며, 인간의 뿌리와 완성은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 모든 죽은 이들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기억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 가난과 배고픔으로 뭉개진 많은 ‘작은 이들’, ‘공동 묘지’에 잠들어 있는 무연고자들도 기억합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한 형제 자매들, 타인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사람들도 기억합시다.”

스탈리아노 주교,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부활을 기억하는 것”

이탈리아 노토교구장 안토니오 스탈리아노(Antonio Staglianò) 주교는 바티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위령의 날’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리스도교는 ‘당신은 부활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선포와 희망과 함께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당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Ricordati che devi morire)는 말은 극복됐습니다. 기쁨과 희망의 선포는 ‘예수님께서는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습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인간 삶의 유일하고 진정한 문제인 죽음에 대한 결정적이고 훌륭한 대답’을 제공합니다. (…) ‘위령의 날’인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들을 찾아 보기 위해서 묘지에 갈 뿐 아니라, 가족들과 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대해 (말하고) 생각을 나눌 의무’가 있습니다. (…) ‘위령의 날’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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